박지윤
꽃, 다시 첫번째
2009. 04. 23.
1. 안녕
2. 봄, 여름 그 사이
3. 바래진 기억에
4. 4월 16일
5. 그대는 나무 같아
6. 잠꼬대
7. 봄 눈
8. 돌아오면 돼
9. 괜찮아요
타이틀곡이 지나친 성적 묘사로 온갖 루머에 휩싸이며 신드롬을 일으켜줬던 소속사와도 등을 진 박지윤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가 이렇게 긴 공백기를 가질 거로 생각한 이는 없었다. 2장의 앨범이 ‘성인식’에 비해 너무 조용히 묻혔지만 그래도 잘 나가는 여자 아이돌 스타 ‘박지윤’이였으니까.
짙은 화장, 배꼽티를 입고 춤을 췄던 그녀의 모습이 벌써 10년 전이다. 10년 전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는 것이 그녀가 평생 가지고 가야 할 업인 것은 분명할 터. 그래서 기타를 들고 6년 만에 새 앨범을 내놓은 모습 자체를 바라보기보다 예전과의 비교부터 생각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
나름 6장의 앨범 경력 소유자라서 기존의 비주얼 가수들이 진짜 음악을 해보겠다며 나왔던 뻔한 패턴과는 등장이 조금 다르다. 어쿠스틱으로 무장한 음악들 사이에서 ‘봄’이라는 컨셉을 갖고 무리하지 않은 채 9곡을 담았다. 그 중 박지윤이 참여한 곡이 4곡이며 참여 뮤지션도 타블로, 루시드폴, 용린(디어 클라우드), 김종완(넬)등 누구의 일방적 프로듀싱에 기대지 않고 폭을 넓게 잡아 놨다.
일단 튀지 않는다. 봄이라는 수식어를 쓰기에 최적화된 악기 구성과 음악적 분위기, 가사들은 앨범 표지부터 시작되는 음악의 첫 대면에서 방향을 잃지 않았다. 그럼 이제 고민해볼 것은 두 가지이다. R&B가 좋아 박진영을 직접 찾아가서 오디션을 봤다는 그녀의 목소리가 장르 변화에 얼마나 녹아내렸느냐는 것과 어쿠스틱을 동원하며 변화의 진정성을 표출해내고 싶은 앨범의 모습이 ‘쇼’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이다.
최종 타이틀까지 올랐다가 낙방했다는 박지윤의 자작곡 ‘봄, 여름 그 사이’를 들으면 낙방의 의미는 단순히 자작곡에 대한 홍보용이 아닌가 싶다. 코드를 넘어가며 잡은 기타 소리와 요란하지 않은 스트링의 묘사가 음악을 표현하는데 있어 부족함이 없지만 대표 곡으로 뽑기에는 부족하다. 약한 후크, 밋밋한 기승전결은 나름 ‘왕년의 스타’의 귀환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결정된 ‘바래진 기억에’는 가장 정확한 판단이다. 후렴에서 보여주는 그녀의 작은 폭발과 뒤 받쳐주는 사운드는 화려한 것을 보여주기 힘든 도구들 사이에서 가장 잘 꾸며놓은 그림이니까. 박지윤의 컴백을 알리기에 뚜렷이 보이는 곡이다.
그러다 보니 나머지 곡들이 빛을 못 본다. ‘4월 16일’에서는 기타, 피아노, 스트링을 이용하여 ‘바래진 기억에’와 같은 방법을 쓰며 끈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대는 나무 같아’ 부터는 확실히 처진다. 곡의 분위기도 일조하지만 편곡의 기법이 앞의 곡과 유사하다. 감정적으로, 표현적으로 완벽해야 집중되는 장르에서 박지윤은 초보 작곡가로서의 한계를 들어내고 말았다. 보컬 또한 재미없다. 성악 공부를 했던 그녀의 목소리는 일정 톤에서 변화를 주어도 크게 와 닿지 못하는데 곡과 함께 일방통행을 진행한다. ‘레이니즘’, ‘스트롱 베이비’를 공동 작곡하며 최근 잘 나가는 작곡가 배진렬과의 작업은 의외다. 이런 사운드에서 구성원으로 살펴보기 어려운 이름이 올려진 것인데 ‘돌아오면 돼’는 전작에서 미디엄 템포곡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박지윤의 모습에서 지금과의 타협점을 이룬 듯하다. 유일하게 가장 모던 록 서러운 곡이기도 한데 제일 자연스럽다. 후속곡으로 내놓는다면 모르는 이에게 앨범 전체에 오해의 소지가 조금 남을 수 있지만 대중에게는 박지윤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보여주기에 적합한 곡이다.
컨셉 앨범의 확실한 성공은 컨셉에 닿았을 때 떠오르느냐이다. 봄을 주제로 담은 그녀의 새 앨범은 봄이 올 때마다 생각기에는 모자란 점이 많다. 봄이라기보다 그냥 박지윤의 어쿠스틱 앨범을 끄집어내라면 꺼낼 수 있을 정도인 거 같다. 그래도 분명한 건 반가운 시도라는 거다. 완벽하게 적응된 목소리도 아니고 곡 구성에도 미약한 부분이 발견되지만 보여주기 위해 변신했던 그녀가 올바른 변화를 위해 도전하는 모습이 남아있는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