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와 숫자들 < 유예 >(2012)
'9와 숫자들'의 등장 시기는 적절했다. '언니네 이발관', '델리스파이스'와 같은 서교 음악시장의 간판들이 긴 휴식기를 가졌고, '검정치마'와 '브로콜리 너마저'가 그 자리를 채우던 과정 속에서 합류하게 됐으니까. 물론 음악 노선이 언급한 밴드들과 유사하다고만 해서 판단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13개로 짜인 트랙의 완성도가 높았다.
< 제8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록 음반 >을 수상하면서 성공적인 데뷔를 치르게 된 이들의 후속작은 예상보다 늦었다. 2011년 봄을 목표로 시작한 작업이 예정을 넘겨버렸고, 1년하고도 반을 더 보내서야 2집이 아닌, 8곡을 수록한 EP로 인사하게 됐다.
오랜만의 등장이지만, 신보는 1집으로 얻어진 기대에 어긋나지 않은 앨범이다. 편곡부터 새롭다. 겨우 한 장의 음반을 냈고, 공백 기간이 길어 다시 과거의 작법을 인용하기에 충분했음에도 반복이 아닌 변화를 택했다. 사운드의 중심축이 신시사이저에서 어쿠스틱 기타로 이동하였고, 박자와 드럼의 톤도 한층 여유롭고 낮아졌다.
이토록 소리에 대한 감정이 달라졌음에도 대중이 기억하는 밴드의 정체성은 가사를 통해 지켜나간다. 밴드는 청년이 고민하는 것들, 청년이 괴로워하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한다. EP의 주제를 단번에 설명하는 곡 '유예'에선 “유예되었네 우리 꿈들은 / 빛을 잃은 나의 공책 위에는 찢기고 구겨진 흔적뿐 / 연체되었네 우리 마음은”이라며 방황하는 청춘의 마음을 위로한다.
현재 홍대 씬에서 대중에게 선호받는 팀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이런 내용의 가사가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이들 중 다수가 '관악청년포크협의회'라는 모임에서 출발했던 기록은 있지만, 그와 상관없이 고통 받는 현 젊은이들의 정서를 대변할 이야기가 부족하다는 점이 중요하다.
한국 가요사에서 이와 같은 흐름은 예전부터 존재했다. 1970년대 세시봉, 양희은, 송골매, 산울림 등은 청춘의 마음을 달래주었고, 수 십 년이 지나 이들에게 울림을 받은 후배들이 활동 중이다. < 유예 >는 그 영향력에서 파생된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