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원
멜로디와 수채화
2011. 03. 23.
프로듀서: 박만희
1. 멜로디와 수채화 (작사: 유기환 / 편곡: 박만희, 권진원)
2. 언제 볼 수 있나요 (권진원 / 박만희, 권진원)
3. 무슨 일이 있나요 (권진원 / 박만희, 권진원)
4. 첫사랑 (유기환 / 권진원, 박만희)
5. 분홍자전거 (유기환 / 박만희, 권진원)
6. 예쁜 걸음마 (Inst.) (권진원, 박만희)
7. 감사드리고 싶어 (유기환 / 박만희, 권진원)
8. 꿈이라도 행복해 (유기환 / 권진원, 박만희)
9. 오늘 아침 비 (Inst.) (박만희, 권진원)
10. 누구나 (권진원 / 권진원, 박만희)
전곡 작곡: 권진원
물에 적신 물감의 번짐이 아름답게 퍼진 앨범이다. 듣는 내내 봄 냄새를 맡게 되고, 동시에 안락감도 절로 전달된다. 물론 'Happy birthday to you' 이후 끊어진 히트곡 행렬은 여전히 빈자리다.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되고, 불혹의 중간에 자리 잡아서일까. < Jinwon Street 5th >(2001) 보다 여유로우며, 어두운 그림자를 심어놨던 < 나무 >(2006)와 비교하면 햇살 가득하다. 다른 분위기를 추구하면서도 욕심 부리지 않았다.
어쿠스틱을 기반으로 짠 정성스런 악기 연주 방식은 그대로다. 기구들의 톤을 바꾸고, 성대의 힘을 낮춘 음색 조합이 자연스럽게 새 앨범의 색깔을 완성했다. 정규 음반임에도 25분 52초의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10곡이 갖는 단결력은 앨범이 존재해야 할 이유도 설명한다. 음악 인생 20년의 관록이 돋보인다.
소소한 일상을 신사적으로 해석해내는 가사들은 이번에도 빛을 낸다. 남편 유기환이 쓴 ‘첫사랑’, ‘분홍자전거’에선 동화 같은 묘사가 돋보이고, 그리움을 나타낸 ‘언제 볼 수 있나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자는 ‘무슨 일이 있나요’에서의 단어들은 센 것만이 해답처럼 보였던 가요 작사 표현에서 세련되면서도 예의를 갖추는 방법을 알려준다.
'예쁜 걸음마‘, ‘오늘 아침 비’에선 처음으로 연주곡도 넣으며 포크로 분류되던 음악인의 새 면모를 보여준다. 밝았던 시작과는 달리, 울퉁불퉁한 신시사이저로 커튼을 치는 ‘누구나’는 일곱 번째 여정의 헤어짐을 깔끔히 알린다. 좋은 작품이다.
이 산뜻한 흐름에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1980년대 후반 민중가요의 대표주자였던 ‘노찾사’의 멤버, ‘살다보면’(1994), ‘토요일’(1994), ‘Happy birthday to you'(1999) 같은 오랜 애청 가요를 생산해낸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존재감이 왜 덜 느껴지는 걸까. 권진원을 아는 음악인구가 시장에서 퇴각했기 때문인가.
권진원은 ‘브로콜리 너마저’, ‘가을방학’과 같은 신세대 뮤지션만큼 일상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가사 제조 능력을 가지고 있고, 당연히 선율을 창조해내는 재능도 있다. 평균 2분대라는 듣기 부담스럽지 않은 편곡으로 짜냈음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만큼 자연스레 음악이 귀에 잠기는 것은 아니다. 예술적인 측면에서는 전작보다 정서와 표현미가 농익었으나 여전히 대중적인 측면에서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본인은 예술성을 우위에 두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그에게 원하는 것은 존재감의 회복이다. 현 세대가 권진원이란 이름 석 자에 익숙하지 못한 것은 시장의 책임이 아니다. 소통의 부재는 새롭게 알릴 수 있는 곡이 적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라디오에서 똑같은 노래만 리퀘스트 될 순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