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앨범 리뷰

푸디토리움 (Pudditorium) - Episode: 이별







푸디토리움 (Pudditorium)
Episode: 이별
2009. 05. 21.
프로듀서 : 푸디토리움
전곡 작곡, 편곡 : 김정범

1. After 11:59 PM
2. Viajante (작사 : Fabio Cadore)
3. 바람은 차고 우리는 따뜻하니 (루시드폴)
4. Sans Rancune (그저 그렇고 그런 기억 French Ver.) (Violette de Bartillat)
5. This Is Love (Saunders)
6. Pra Fazer Uma Cancao (Fabio Cadore)
7. Sunset Dance
8. As Voltas Com O Frio (Fabio Cadore)
9. Entre Os Passos Do Amor (Fabio Cadore)
10. Drown 
11. 겨울 장마 (Feat. 루시드폴) (루시드폴)
12. 재회(齋會)
13. 그저 그렇고 그런 기억 (김정범)

우리는 살면서 재즈(Jazz)란 단어를 얼마나 접할까? 또 얼마나 들을까? 비주류로 취급되지만, 신기할 만큼 친숙한 용어이며 카페, 음식점에서 매번 부딪히는 음악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익숙한 장르다. 

그래서 재즈에 대해 얘기하라면? 이상하게도 손발이 오그라들며 지문까지 사라질 거 같다. 듣고 싶든 안 듣고 싶든 많이 접했던 사실이 있음에도 뚜렷하질 못하다. 게다가 오래된 재즈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말해보려면 빈틈이 너무 많아 엄두가 안 난다. 이게 재즈를 바라보는 청자의 현주소 중 하나다. 

푸디토리움(Pudditorium)의 장르가 팝 재즈(Pop Jazz)라고 한다. 팝이 달려 반갑긴 하지만 그래도 재즈다. 잔뜩 겁을 먹은 채 음악을 틀면 재즈 분위기가 전반에 깔리면서 월드 뮤직이란 단어도 생각나고 멜로디도 들어온다. 듣는 즉시 감상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땀 딱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대중음악이다. 

팝 재즈 밴드 푸딩(Pudding)의 전 멤버 김정범이 홀로 세운 푸디토리움은 그가 해보고 싶었던 음악 작업에 대한 결실 중 하나다. 미국을 거점으로 상파울루까지 7개 도시에서 공작한 < Episode: 이별 >은 외국 스튜디오을 이용한 장점도 있지만, 브라질의 대표 싱어송라이터 파비오 까보레(Fabio Cadore), 그래미 어워드에서 3차례((2003, 2007 재즈), (2005 편곡))나 상을 받은 편곡자 길 골드 스타인(Gil Goldstein), 2007년 뉴에이지 수상자 첼리스트 유진 프리즌(Eugene Friesen)등 자국은 물론이며 세계적으로 업적을 이룬 뮤지션들의 이름도 담겨 있다. 그렇다면 스튜디오 멤버를 제외하고 스태프 명단에 올라와 있는 유럽과 남미 사람들은 어떻게 김정범과 만난 것일까? 놀랍게도 이 모든 작업은 발품 하나 없이 클릭으로만 이루어졌다. 이메일 주소를 알아내 도와달라고 편지를 보냈고 세션들은 넓은 마음으로 오케이를 외쳤다. 

진행 방식은 곡을 녹음한 mp3파일을 이메일로 보내면 내려 받아 연주나 노래를 한다. 수신자에게 가사도 전부 맡긴다. 그러기에 < Episode: 이별 >에서 들려지는 제3세계 언어는 현지 주민이 직접 쓰고 부른 본토 필(Feel)이다. 가사에 대한 저작권 또한 따로 없다. 답장을 통해 가사를 적고 녹음한 파일을 담아 보내고 나서 김정범에게 해외 전화만 하면 된다.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원대한 관계는 오직 음악 안에서 나온 힘이다. 

환상의 조건들은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함을 살피게 해준다. 즐거운 파티, 격식을 차린 분위기보다 혼자 기울여진 의자에 앉아 휴식의 안락을 갖게 해주는 편안함이 깔렸다. 거늑한 여유는 무엇보다 악기다. 드럼의 강도를 최대한 절제한 채 대부분 곡에 퍼커션을 넣었고 싱거울 법한 걱정은 트럼펫, 플루겔 혼, 페니 휘슬, 클라리넷, 플루엣, 하모니카 등을 넣어 적절한 간을 내준다. 재즈의 색깔은 베이스와 피아노를 통해 전해준다. 낭만적인 통기타가 주름잡는 'This is love'에선 피아노가, 효과음이 매력적인 'Sunset dance'는 베이스가 고급스러운 기분을 낸다. 

외국 뮤지션의 생소한 발음을 듣는 재미도 놓칠 수 없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지만 낯선 언어가 담긴 목소리는 이국적 분위기를 제대로 뽐내준다. 해석 불가능한 가사의 아쉬움은 멜로디로 대처한다. 적어도 듣고 나면 몇 번 트랙이 무슨 노래인지 구분할 만큼 낭만적 분위기에 걸맞은 수려한 선율이 장식되어 있다. 타국의 풍(風), 그 기분을 알려줄 정도의 악기와 뮤지션이 있을 뿐이다. 어려운 게 없는, 팝이란 단어를 쓰기 충분한 앨범이다. 

어쩌면 < Episode: 이별 >은 일반적으로 가장 난해해 보이는 매니아적 음악들만 담아냈다. 재즈도 그렇고 월드 뮤직도 그러며 보기 드문 악기 구성도 그렇다. 하지만, 들린다. 신기하지 않은가? 먹기 싫은 재료만 들어가 있는 상태라서 인상 찡그리며 입에 넣지만, 그 맛은 내가 부담스럽지 않게 먹었던 그 맛이다. 

푸디토리움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서먹함을 와 닿게 해주는 힘. 월드 뮤직 좀 들어보겠다며 사들인 시디를 장식장에 인테리어로 남기는 것이 아니라 혼자 있고 싶을 때면 언제나 스피커와 함께 등장해주는 선호용품이 되는 것이다. 어려운 음악을 쉽게 풀어준 것도 모자라 애장까지 해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앨범인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