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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리뷰

브로콜리 너마저 - 앵콜요청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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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 너마저
앵콜요청금지
2007.10.30.

01. 말
02. 끝
03. 앵콜요청금지
04. 마침표
05. 청춘열차
06. 안녕

- 앵콜요청금지
들어보지도 못한 채 새 앨범을 고를 때는 무조건 '브랜드' 순이다. 써보고 만져본 제품을 통해 새 제품을 기대하고 구입하듯, 음악도 들었을 때 좋았으면 일단 다음 앨범에 대한 충성도는 무한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어느새 가전제품의 브랜드처럼, 이 음악 장르에서 이 사람의 음악은 절대적이라고, 신뢰가 깨지기 전까지 마음속에 굳게 걸어 잠그고 있다. (게다가 그 신뢰도. 웬만해서 잘 안 깨진다) 그래서 동일시기에 잘 알지 못하는 이가 나오면 그때 들어야 더 흥이 났을만한 음악을 놓쳐 아쉬워하기도 하고, 이제 겨우 알았는데 절판되어 발품 팔 때마다 선입견에 둘러싼 못난 나 자신을 탓하기도 한다.
'브로콜리 너마저'라는 생소한 이름을 가진 밴드와의 인연은 운 좋게도 발매 한지 1주일도 안 돼서 알았다. 뭐 들을만한거 없나 신보 리스트를 봤는데 그 주에 나왔던 거다. 그러나 평상시처럼 마우스 포인터가 그쪽으로 잘 안 움직였다. 개인적으로 튀는 거까지는 무난하게 보는데 '스타일' 이 마음에 와 닿지 않는 이름은 별 관심이 없기에, 다른 거 다 둘러보고 볼 거 없어서 자켓을 클릭하여 세부 내용을 보니 타이틀은 더 가관이다. '앵콜요청금지' 그래서 나는 장르 카테고리를 보지도 않은 채 섣부른 판단을 해냈다. '이거 혹시 엽기 펑크 밴드?' 평소 같았으면 이런 EP에 관심도 안 갖는다. 더 정확히 말해서 '뭐야' 하고 넘어가고 그걸로 끝이다. 나름대로의 기준을 잡자면 신선도는 충분할 수 있으나 들어줄만한 뭔가는 확률적으로 낮게 나온다는 편견이 있기에, 나는 전형적으로 '대중음악' 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때는 진짜 들을만한게 없었다. 이렇게 간단히 말하면 비난의 대상이겠지만 더 자세히 말하면 '신보' 중에 듣고 싶은 게 없었다. 가진 거 다 질려가는 판국에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했고 일단 아무거나 들어보자는 마음이였다. 그래서 음악과 연계된 IT기술 중 가장 잘 접목된 '미리 듣기' 를 누르게 되었고 순식간에 '앵콜요청금지' 는 요즘 내가 제일 앵콜 외쳐버리고 싶은 곡이 되었다.


- 돌아온 그 시절
분기를 대변하기도, 1년을 대변하기도, 한 시대를 대변하기도 하는 게 장르의 유행이지만 일렉트로닉을 좋아하는 내가 지칠 정도로 전자 음악이 쏟아져 나오는 2008년이다. 나 혼자 듣고 싶을 때 찾아들었던 몇 해년전의 추억들이 이제는 공중파 가요 프로그램 순위에서도 심심치 않게 들릴 정도로 일렉트로닉이란 장르는 점점 대중화되고 있다. 듣기 싫어도 들려지는 순간이 있고, 좋았던 녀석이 밉상이 되는 딱 그런 시점이 현재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오리지널 스러운 뭔가가 그리웠고 필요했다. 오리지널이라고 쓰니 범위가 너무 넓어진 듯하지만 옛날에 들려주던 음악들이 생각났던 거다. 그리 멀지도 않다. 한 90년대 중후반쯤. 스스로 그렇게 의식하지 않아도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필요로 했고 정답을 갖고 있지 않아도 보는 걸로 알아차릴 수 있는 타이밍이 지금이었다. 브로콜리 너마저는 그 타이밍에 등장한 거다.

처음 느낀 건 90년대 후반 처음으로 시작되어 '진짜' 인디 음악이 들려지던 그때가 생각났다. 굳이 비슷하게 따지라면 '언니네 이발관 2집' 정도. '어제만난 슈팅스타'가 이 정도의 탁함이였으니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저예산의 녹음방법은 가장 효과적인 사운드를 창조해내고 말았다. 그리고 살짝 부끄러워질 듯 하다가도 지금은 2008년이라는 걸 보여주는 리프와 후렴은 음악에 어떤 흠도 잡아내고 싶지 않은, 이런 식의 완벽함이 지금도 살아 있다는 걸 증명해주고 있다.


- 블루투스 너마저
유식한 이들에게도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밴드명과 곡 제목 등은 브로콜리 너마저를 알아가고 음악을 듣는데 더 효과적인 재미를 만들어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주 쓰이는 단어들을 조합해 내놓기 바쁜 이 시대에 적당한 난이도로 출제해놓은, 오랜만에 찾아온 '비밀 마케팅 전략' 인거다. (비밀 마케팅에 전략이란 단어까지 쓰는 게 조금 어색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딱히 어렵게 표현해 줄 것도 없다)
그리고 쓰인 6곡의 가사들은 언어의 소통을 통해 오해하고 싶고 그냥 지나쳐서 숨겨버리고 싶은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다. 조금은 어려울 수도, 달리 놀 수도 있는 가사들조차도 음악과 한 방향을 잡은 채 감수성을 이끄는데 충분한 교두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별의 과정을 기막히게 표현한 '앵콜요청금지' 와는 달리 밴드명이 브로콜리 너마저는 싱겁게도 '아무 의미' 없다. 인터뷰를 통해 보니 한때 광고였던 '블루투스 너마저'를 보고 '튀고' 싶어서 내놓은 밴드명이라고...


- 브로콜리 너마저
웃으면서 넘겨야 할 의미들과 여건에 밀려 선택한 작업이 내놓은 브로콜리 너마저의 첫 EP는 그야말로 '대 성공' 이다. 치밀한 작전도 아닌, 어떻게 보면 인디음악에서 일반적으로 보이기도 할 수 있는 패턴들이 었지만 음악이라는 본래의 목적 하나로 그 의미 하나하나가 그냥 지나치지 않은 채 모두 살아났고 시대적 흐름에 맞물려 그 효과는 곱절이 되고 말았으니까. 그렇다고 운이라는 표현을 쓰면 절대 안 된다. 홈레코딩이 발전한 이 시대에 누가 이런 상상을 했겠는가? 어떻게 보면 2008년 한국음악의 새로운 발명인 것이다.


다양성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한 곳에서 '브로콜리 너마저' 라는 보물이 또 나왔다. 6곡 밖에 안되는 짧은 러닝타임을 저주하며 이제 이들의 정규 앨범을 천천히 기다려보자. 잊혀질만 할 때쯤 우리의 감수성을 또 꺼내줄지 누가 알겠는가? 그 기다림을 선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브로콜리 너마저의 존재는 충분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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