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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리뷰

키비 - The Passage









키비
The Passage
2009. 05. 07.

01. Soulport
02. Diving
03. Wake Up
04. 사진기 (Feat. Lady Jane)
05. 불면제
06. 화가, 나 (Feat. 넋업샨, Loptimist, Jinbo)
07. Go Space (Feat. Soulman)
08. 이상한 나라의 엘리트 (Feat. Tablo)
09. Goodbye Boy (Feat. Minos)
10. 그림자
11. Where Is The Craps? (Feat. 샛별)
12. 인사 (Feat. Junggigo)
13. Still Shining (Feat. The Quiett, D.C)
14. 이 별에서 이별까지

래퍼, 작사가로서의 왕성한 활동은 물론이고 소속사의 대장으로서도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는 키비이지만 잘 드러내지 않는 또 하나의 능력은 프로듀서다. 전작 < Poetree Syndrome >의 호평은 충분히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키비는 그 숨겨진 재주 다시 꺼냈고 동시에 작곡가로서의 가능성까지 보여주며 돌아왔다. 

우주, 무지개, 중앙에 쓰인 여정이란 단어는 또 하나의 여행을 소개해낸다. 인스트루멘탈 곡 ‘Soulport’는 그 출발 전의 두근거림을 비트로 옮겨놨고 ‘Diving'은 초반 트랙에서 보기 어려운 느긋한 속도로 “겁먹을 필요 없어 / 지체할 필요 없어”를 외치며 시작을 알린다. 턴테이블의 공격적인 스크래치로 곡을 장악하는 ’Wake Up‘까지 진행되면 부푼 기대감이 터지게 된다. 조금 길다 싶은 오프닝이지만 과정의 표현은 지루하지 않다.  

여정의 첫 곡은 ‘사진기’다. 귀를 감는 후크와 레이디 제인의 멋진 보컬이 있음에도 포인트를 남발하지 않는다. 펼쳐지는 랩은 곡과의 조합에서 우선권을 쥔다. 그 흐름은 끝까지 잃지 않으며 주인공의 등장을 지켜준다. ‘불면제’로 이어지며 < The Passage >는 대중에게 접근하기 쉬운 곡을 선사한다. 프로모션 트랙 ‘Go Space'에서는 이러한 노력의 결실을 보여준다. 회심의 바운스와 후렴, 다시 바운스를 연달아 내세운 부분은 청각적 극대화를 위해 수정 끝에 나온 느낌이다. 구체적 상황을 나열한 랍티미스트의 앨범 < Mind Expander >에 곡 ‘Ghost Writer'의 후속편인 ’그림자‘에서는 내용 자체가 함축됐다. 동정심까지 만들어주었던 스토리텔링의 곡이지만 후편은 많이 가려 놨다. 곡에 깔린 배경도 인스트루멘탈 형식이다. 피처링의 호소가 있던 예전을 기억한다면 곡과 내용에서 시원찮다. 

작곡가의 구성은 크게 절반을 기준으로 랍티미스트가 주도한 앞쪽과 키비가 주도한 뒤쪽으로 구분할 수 있다. 주도권이 나뉨에도 어색하지 않은 건 앞서 언급한 키비의 능력이다. 악기 구성에 일렉트로닉이 첨가되지만, 기존의 활동했던 곡들과 새로 나온 곡들의 이질감은 없다. 이어짐은 계속 되데 조금씩 다양해지는 사운드는 적응하기 쉽다. 

문제는 이런 점층적 변화에서 사라진 부분이 있다는 거다. 핵심은 플로우의 속도다. 시발점은 ‘불면제’부터. ‘화가, 나’는 물론이고 프로모션 트랙 ‘Go Space', ’이상한 나라의 엘리트‘에서도 피처링들과는 달리 유독 키비만 늦추지 않는다. 같은 속도여도 숨을 고르며 이야기를 펼쳤던 < Poetree Syndrome >을 기억해낸다면 변화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런데 그게 음악을 전달해주는 이해도를 떨어트린다. 감성적 표현을 주로 쓰는 래퍼로서 표현의 의미 상당수가 비유적, 은유적임을 고려할 때 그의 음악에서는 들리는 것만큼 이해하는 재미가 있다. 어렵지 않은 비유를 통해 공감을 이끌어내고 표현한 만큼 듣는 이의 감정을 당긴다. 변화된 속도는 그 이점을 잃고 만다. 가사 전달력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아니다. 작은 차이가 공감의 시간을 너무나도 부족하게 만들었다. 

특히 그 부분이 앞쪽에서 발견되는바. 악기 적 구성과 최근 음악 분위기에서 키비에게 어울리는 곡을 선사한 랍티미스트의 능력은 ‘완벽하게 어울렸다‘라는 표현을 쓰기가 어색하다. 이루펀트 이후 오랜만에 작업한 마이노스부터 키비가 주도한 후반의 흐름을 비교해보면 더 예쁘고 알차 보이지만 실속은 없다. 득이자 독이다. 그래서 후반 ‘Goodbye Boy', '인사’를 만나게 되면 ‘덩어리들’, ‘Beautiful Memory' 등 예전을 그리워했던 부분을 채워준다. 만족할 만큼은 아니지만 그리움을 충족시켜주기에 알맞다.  

한번 떠났던 여행을 또 가게 되면 준비성은 더 단단해진다. 빠진 물품이 있나 확인도 하고 계획이 틀어질까 꼼꼼히 살펴보기도 한다. 전보다 더 재밌게 놀려고 구상도 많이 한다. 도구와 절차가 가득한 < The Passage >를 듣고 나면 실컷 구경은 잘하고 왔는데 여운이 남질 않는다. 돌아다니기 바빠 움직이는 내내 쉬질 못한 거다. 큰 이벤트 없이도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 전 여행 < Poetree Syndrome >과 비교했을 때 아쉬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다시, ‘Take sea'로 시작했던 바다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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