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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제65회 그래미 어워드 단상


그래미 수상 결과가 마치 신의 선택인 것처럼 받아들일 때가 있었다. 그건 음악 장르가 칸막이처럼 명확하게 나누어지고, 인터넷을 통해 아는 정보가 지금처럼 많지 않던 시절이다. 가장 권위 있다는 시상식에서 그렇게 정했다고 하니 그런 줄 알았고, 실제로 뭔가 놓쳤던 한 방을 가져다주는 쾌감도 전달됐던 게 사실이다. 물론 그 전율이 선정 과정에 대해 잘 모르는, 무지의 상태였기 때문에 전달됐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결과를 보게 되면, 그냥 이게 맞나 싶다. 선정위원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고, 그래미 시상식의 절차도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게 되다 보니 결과의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걸 알게 됐다.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대중음악 문법이 달라진 게 가장 크다. 변주가 보편화되면서 장르적으로 음악을 나누기 굉장히 애매모호한 시대. 이 시대에서 그래미가 장르 음악을 선정하고 발표하는 게, 굉장히 불편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순간이 있다. 

오늘(2/6) 발표한 제65회 그래미 어워즈 수상 결과도 그렇다. 간단하게 댄스/일렉트로닉 장르만 살펴보자. ‘올해의 댄스/일렉트로닉 앨범에 비욘세의 [RENAISSANCE](2022)가 선정됐고, ‘올해의 댄스/일렉트로닉 리코딩’에는 이 앨범에 수록된 ‘Break My Soul’가 뽑혔다. 이것만 보면 댄스/일렉트로닉 분야를 모두 석권한 [RENAISSANCE]가 갑이었다는 의미로 전달된다. 그런데 [RENAISSANCE]의 수록곡 ‘VIRGO’S GROOVE’베스트 R&B 퍼포먼스후보에 올랐고, 또 다른 수록곡 ‘PLASTIC OFF THE SOFA’베스트 트레디셔널 R&B 퍼포먼스에 노미네이트 되더니 수상까지 했다. 심지어 ‘CUFF IT’올해의 베스트 R&B 이 됐다. 수상 숫자로만 보면 [RENAISSANCE]R&B에서 두각을 나타낸 곡의 숫자가 더 많은 게 사실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살펴보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의 장르 지분 때문에 그렇다. [RENAISSANCE]는 댄스와 R&B가 구역을 확실하게 나누고 있으니까. 그래서 이 앨범은 댄스/일렉트로닉이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R&B 앨범이라고도 말하기 어려운 포지션을 갖고 있다. 

개인적으로 [RENAISSANCE]는 곡별 후보가 댄스와 R&B 등 각 장르에 나뉘어 올라온다고 해도, 앨범은 다른 부분에 소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굳이 넣으라면 얼터너티브 분야겠지. 아니면 이런 앨범들을 위해 새로운 분야를 하나 신설하는 것도 현대 대중음악 흐름에서 결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실제로 다양한 장르를 섞어 내는 앨범이 많이 나오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래미도 별다른 대안은 없었고, 결국 기존에 있던 칸막이에 어떻게든 구겨 넣으며 올해의 앨범 수상은 실패한 [RENAISSANCE]를 애매하게 위로하고 말았다. 

매년 낮아지고 있지만, 이번 결과 때문에 개인적으로 그래미에 대한 신뢰도는 더 낮아지고 말았다. 방탄소년단이 올해도 수상에 실패한 그래미. 언론에서 여전히 호들갑 떠는 그래미지만, 정말 예전만큼 대중에게 믿음직스러운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차라리 유튜브와 스포티파이에서 스트리밍 횟수가 높은 음악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이 가는 상태랄까. 나아가 요즘 같은 시대에 권위 있는 시상식의 존재가 정말 필요한지 의문이 든다. 조용히 묻힌 앨범이라도 정말 좋다면, 어떡해서든 그 음악을 누리꾼이 살려내는 시대가 됐으니까.

- 이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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